남사(南沙) 전통취락 연구 울산공대 건축학과 1983

- 실측조사: 이규성 외 5인 교수와 학생, 인문조사: 김관석 (당시 한국건축사 전임강사) -


서언

본 연구의 대상지인 남사(南沙)마을은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남사리이며 약 80여 가구가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성주이씨(星州李氏), 밀양박씨(密陽朴氏), 진양하씨(晋陽河氏) 등의 여러 성씨가 화합과 대립을 거치며 수백년간 살아온 터전이다.남사는 마을 북쪽의 시내(淸溪)를 경계로 상사(上沙)(행정구역 : 단성현 사월리)와 격하여 있으나 두 마을은 하나의 영역으로 합쳐저 있어 외부에서 사월(沙月) 또는 남사라고 불러 두 마을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동제(洞祭)나 동약계(洞約契)등에 두 마을의 주민이 같이 참여하고 있다.

남사는 지리산이 동쪽으로 뻗어서 안태산(安泰山), 문수산(文殊山), 삼장산(三壯山), 계명산(鷄鳴山), 유산(楡山), 율현(栗峴) 봉우리와 재를 남기다가 니구산(尼丘山)에 이르는 곳에서 분지를 이룬 곳에 마을을 형성시키고 있다.청계는 이마을의 유교적 전통에 따라서 사수(泗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소남리(召南里)에서 경호강(鏡湖江)과 남강(南江)으로 흘러간다.남사는 지리산의 정기가 동쪽으로 뻗어나오는 곳에 아늑하게 자리잡아 산수가 아름답다. 여기에서 수 많은 선비들이 태어나 서당에서 공부하여 많은 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밫내던 학문의 고장으로, 한식 기와집들이 여러채 보존되어 있어 지금에도 엣날의 번성을 한눈에 알 수 있으나 지금은 산청군의 한 평범한 마을로 변모하였다.

본 연구는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차츰 소멸되어가는 이 마을의 건축물들을 하루라도 빨리 실측도면화하여 한국민가건축연구에 일조하고자 하는 연구진의 의욕으로 착수되어 마을배치도, 주거평면도 및 주요건물의 경우 입면도와 단면도를 완성시켰고 인문조사에 의해 전통적 생활양식을 수집 소개하였다.본 연구에 있어서는 우선 현황을 있는 그대로 가능한 한 많이 수록하는 방침을 세웠으며 이에대한 해석은 후일로 미루었다. 후일의 해석에 있어서는 이 보고서의 내용과 현지 확인이 병행되어 연구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중략) .....

위의 서언에다가 인문조사 연구자였던 본인이 여기에 몇마디 첨언한다. 여기에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숙종(肅宗)-영조(英祖) 때의 단성현 호적대장이 발견되어 있어서 참고할 수 있었던 주민들의 족보와 비교해서 연구하였었다. 그 중에는 관심을 끄는 내용들도 꽤 많았지만 당시 인문조사 내용에는 한국전통건축과 관련해서만 간단히 기술했었다. 그 무렵 이 마을의 어른으로서 이야기를 자주 나눠주신 고 이병목(李炳穆)옹께서는 일제시대 때 동아일보 발기인 중의 한 분이셨다. 보고서 책 뒤 커버의 사진은 본인이 촬영한 것으로서 남사의 대표적인 가옥인 이상택씨가를 들어가는 골목에 심어진 X형 나무는 남사를 상징한다 하겠다. (사진 '남사에서' 참조) 다음의 연구자들을 위해 간략한 인문조사이지만 실측조사연구와 함께 어우러져 한국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돠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기에 발췌 편집하여 다시 게재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남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상사가 같이 실측되지 아니한 것이 아쉽다 하겠다.


위치도

주요장소 및 건물 위치도



배치도



마을 전경



李商澤가옥(38) 부근 실측평면도



李商澤가옥 안채

李商澤가옥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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