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43구간: 구룡령-갈천곡봉-조침령

2000년 7월 14일

이승옥(8회)

나는 어려서부터 산과 자연을 좋아했다. 젊은 시절에는 직장일 때문에 기회를 별로 얻지 못했으나 지금은 은퇴하여 시간이 많고 직장을 떠난 고독감을 달래기 위해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자연에 나가곤 한다.

누가 산에 같이 가자고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절한 적이 없다.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가끔 혼자라도 나선다. 일단 간다고 생각했으면 비가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계획된 구간은 끝까지 간다.

산은 내가 직장에 나가거나 집에서 놀고 있거나 바뀜이 없다. 세월이 바뀌어도 언제나 늘 푸름으로 나에게 용기를 준다. 산에 오르니 영혼의 고향을 찾은 느낌이다. 인간은 흙에서 와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산에 오르면 푸른 하늘과 어울리는 짙은 녹음의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숲을 안고 구름을 이고 우뚝 솟은 봉우리

그러나 어느때는 산자락에 짙은 운무를 거느리고.....

나는 동문산우회가 추진하는 백두대간이 자랑스럽고 꼭 완주하고 싶다. 사정이 생겨 참석 못하면 다음에 혼자 보충한다.

매요리-새맥이재-사리봉-복성이재

죽령-제2연화봉-제1연화봉-소백산 비로봉-국망봉-고치령

고치령-갈곶산-선달산-박달령

구룡령-갈천곡봉-조침령의 4구간을 단독 주행했다.

이중에서도 죽령-고치령-박달령 2구간은 당일 종주했다. 사정상 구룡령-조침령 구간을 동문들과 함께 할 수 없어 혼자 종주하기로 하고 우리 팀은 2000년 7월 9일에 종주했으나 나는 7월 14일에 보완했다.

7월 13일 아침 8시30분에 동서울에서 오색-양양-속초행 시외버스를 타고 12시 40분에 양양에 도착했다. 오후 1시 30분에 갈천행 시외버스를 예매하고 라면 한 그릇을 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시발점인 구룡령은 동으로는 양양군 서면 갈천리이고 서로는 홍천군 내면 명개리이며 종착점인 조침령은 동쪽으로는 양양군 서면 서림리이고 서쪽으로는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이다.

인제군 기린면은 민가가 극히 적다. 내가 군 근무를 하던 58년경에는 인제 소양강변에서 포격 연습하던 목표지점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굵은 나무가 거의 없고 작은 잡목으로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나는 58-59년도에 양구 인제 원통 서화 화천지역에서 포병 측지병으로 근무한 인연으로 이 지역에 특별히 관심이 많다. 펀치볼, UN고지, 파라호, 제3땅굴,...

서울에서 출발할 때에는 양양에서 서림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 나머지 구룡령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구룡령에 가는 버스는 홍천에서는 아침 7시10분에 한번이고 양양에서는 아침 8시10분에 한번뿐이므로 산행에 시간 맞추기가 힘들다. 그러나 의외로 양양에서 구룡령 방면 버스는 갈천리까지 하루 다섯 번 있다. 버스로 양양에서 서림리는 30분 걸리고 갈천리까지는 55분 걸린다.

갈천리에서 버스를 내려 구룡령까지 걸어야지 하고 서림초교 갈천분교(폐쇄)에서 물을 잔뜩 받아가 지고 부지런히 재를 오르는데 젊은 부부가 타이탄 트럭을 타고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손을 들고 세우니 편승을 허락해 4시도 안되어 구룡령에 쉽게 올라 왔다.

어제 서울에서 구룡령 휴게소에 전화를 걸어 목요일 밤, 방 하나를 예약했으나 휴게소에는 방이 없다 한다. 낭패였다. 이곳은 구룡령 정상휴게소이고 구룡령 휴게소는 갈천리에 있단다. 어쩐지 갈천리를 지나면서 구룡령휴게소 간판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였었다.

잘 곳이 없으면 휴게소 처마 밑에서라도 자야지하고 주위를 돌아보다가 구룡령 정상에 동물 생태계 유지 구름다리 연결공사를 하는 인부들의 콘테이너 박스가 있어 문을 열어보니 잠겨 있었다. 양양 방향으로는 트럭을 타고 올라오면서 아무 곳도 쉴 곳이 없음을 보았으므로 홍천 쪽으로 쉴 곳을 찾아 내려가니 언덕 밑에 작은 콘테이너 박스가 있었다. 다행히도 문을 열어보니 열렸다. 다시 휴게소에 올라와 그곳이 누구의 무엇을 위한 콘테이너인가를 휴게소 주인에게 물으니 겨울철에 도로공사 제설인부의 휴게소라 한다. 내부에 전기시설도 있으나 단선 되어 있었다. 우선 아쉬운 대로 생전처음 콘테이너 원룸 신세를 지면서 가지고 간 침낭과 손전등을 유용하게 썼다.

날씨가 흐리니 저녁 6시인데 어둑어둑하더니 밤 8시가 되어도 어둡지가 않았다. 차량도 뜸하고 구룡령을 오르내리는 차량들의 액세러레이터와 브레이크 소리에 밤잠을 설치고 새벽 2시에는 누워있기도 지겨워서 인적이 없는 휴게소 주의를 돌다가 4시에 구름다리를 건너서 일행들이 지나간 그대로 가리라고 생각하고 손전등을 켜고 출발했다.

4시 반쯤 되니 먼동이 트기 시작하고 5시가 되니 새들도 지저귀며 나를 반기고 이제는 손전등도 임무완료를 했다.

운무속을 거쳐 산과 산 사이를 지날 때는 마치 구름 위에 앉은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맑은 하늘과 섬같이 보이는 산봉우리와 물결치는 듯한 구름바다가 함께 어울려 멋진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었다. 아침 햇살 사이로 드리운 나무 그림자가 곱기만 하였다. 오가는 구름사이로 나무 그림자를 무참히 짓밟고 지나치지만 푸른 풀밭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도 하나의 엄연한 존재이고 보면 어느 때에는 사뭇 애처로운 감도 들었다.

고갯마루에 오르니 가끔 산새들이 부지런히 무언가 물어 나르는 모습도 보였다. 아마도 어린 생명을 키우기 위해 먹이를 물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 햇살을 즐기듯이 산새들도 맑은 아침 햇살을 쏘이며 무럭무럭 자라고 나무와 풀들도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잘 자라겠지.

1115고지 옆을 지나니 물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물주머니에서 물이 안 올라왔다. 아직 갈 길은 3분의 1이나 남았는데 물을 구할 곳은 없고 급하면 어느 계곡을 좀 멀리라도 내려가는 수 밖에 없었다.

날씨가 햇볕이 쨍쨍하지가 않아 평시 안경을 쓰고 갔는데 나무 가지에 걸려 안경이 날라 갔다. 30분이나 찾으려고 주위를 헤맸으나 허사였다. 내 시력과 실력으로는 찾아내기가 불가능하였다. 아마도 동문들과 같이 왔으면 틀림없이 누구 찾아 주었을 것이다.

10시 반이 지나 762m고지를 오르니 멀리 비포장도로가 보였다. 그러나 지도를 보니 아직 갈 길이 거의 4분의 1이나 남았다. 용기를 내어 높고 낮은 산을 계속 넘어가는데 지치고 지루하고 갈증으로 참기 힘이 들었다. 물을 먹고 아침 식사를 좀 하여야 할 터인데 물이 없어 식사도 못했다. 허기가 지고 갈증이 나서 언덕에 잠깐 누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10분이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자고 있었고 방향을 잃어 저 밑으로 내려가면 되지 하고 내려가는데 방향이 남향이지 않은가? 다시 되돌아오면서 작은 산을 두어 개 넘었는데 리본도 안보였다. 시간이 벌써 11시50분이라 김관석동문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위치를 대략 알리며 물었더니 북쪽으로 20-30분가면 조침령이라 하였다.

역시 25분 정도 가니까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동쪽 서림리 방향으로 100m정도 가니까 공병대의 조침령 비가 보였다. 나는 산에서 길을 잘 모르면 휴대전화를 잘 쓴다. 산중에서 휴대전화가 안 걸리면 큰 도로변으로 나오면 요즈음은 전국 어디서나 거의 다 걸린다.

조침령 비 앞에서 배낭을 벗고 신발끈을 풀고 쉬면서 앉아 있으니 진동리 양수발전소 건설 현장 덤프트럭이 올라왔다. 손을 들어 세우고 서림리까지 편승을 부탁하니 쾌히 승낙하여 처음으로 그렇게 큰 덤프트럭에 타 보았다. 나이 든 운전기사는 친절하게도 더운데 계곡에서 찬물로 세면이라도 하고 가자며 마호병에 든 물도 주었다. 갈증이 나서 물 한 통을 거의 다 마셨다. 그리고 급경사진 언덕길을 내려가며 서림폭포 앞에서 세우면서 설명하여 주고 목적지를 물어 서울 간다니까 양양 고속버스 터미날까지 태워 주었다. 기름값이라도 주려고 하니까 극구 사양하였다.

너무 고마워서 "나도 당신처럼 좋은 일을 하면서 그때마다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하니까 운전기사가 너무 좋아하며 "별것도 아니데 감사합니다" 하고 답례하였다.

때묻지 않은 산행 백두대간...

소박하고 웅장하고 장엄한 자연 그대로의 백두대간...

3년이상 사계절을 고루 종주하면서 기후와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면서 종주한 백두대간...

지리산 중산리로부터 설악산 진부령까지 즐펀한 능선과 우뚝한 봉우리를 지나며 가지각색의 야생화, 산나물과 약초, 상록수와 낙엽수를 본다.

세찬 비바람에 시달리며 바위 위에서 용트림하는 소나무,

질펀한 고원의 쭉쭉 곧게 뻗은 나무숲,

언덕 위의 외로운 나무,

절벽 낭떠러지 위에 매달려 처진 나무,

각종 자연 그대로의 나무를 수없이 많이 보았다. 전에는 집에서 키우는 화초만이 예쁜 줄 알았는데 등산을 하면서 이제야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나는 근래에 시간이 나면 산에 자주 오른다. 푸른 산이 어서 오라 나를 부르기 때문이다. 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나붓기며 나를 오라 손짓한다. 신선한 공기가 내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주며, 맑은 물이 내 마음까지도 맑게해 주며, 나무그늘이 나의 이마의 땀을 씻어주며, 가냘픈 풀잎들이 보드럽게 내발길에 와 닫는다.

산행은 먹고 놀고 즐기며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움을 겪고 참고 견디는(難關을 體驗하고 忍耐하고 克服하는) 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제하고 절도있게 살아가는 방법도 산행에서 배운다.

우리는 계속 능선만으로 종주하다가 구간을 마치고 계곡으로 내려 갈 때 물을 만나면 반갑게 목마름을 해소하고 간단히 목물로 땀을 씻어내는데 그것도 백두대간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즐거움의 하나다.

지리산 천황봉에서 북쪽 향로봉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은 앞으로 몇 차례 산행을 하고 나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실은 향로봉에서 백두산 천지까지 완주해야 하는데 반 토막 남은 구간은 언제 마저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백두산 천지는 중국측만 종주하였으나 천지라도 빨리 일주하고 돌아오고 싶다. 금강산도 가는데 백두산이라고 못갈까?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 질 것만 같다.

백두대간 단장님과 임원들과 산행동문들의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에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