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42구간: 진고개-신배령-응복산-구룡령
2000년 6월 10일-11일
정재우(7회, 백두대간 종주단장)
내일(6월10일)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구간을 이승옥, 이익효 고문과 함께 막영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적막강산 심심산중에서 이름 모를 새소리와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초여름 하룻밤을 보낼 생각을 하니 20여년 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등산장비의 무게와 부피를 15Kg에 45l이하로 제한하여 짐을 꾸려본다.
6월 10일 아침 6시 20분 강변 역전 동서울 터미날에 도착하니 이승옥씨와 이익효 고문이 미리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
우리 셋은 강릉행 첫차로 진무에 도착하여 간단히 시장을 보고, 택시로 진고개에 가니 오전 10시 30분. 날씨는 구름이 적당히 해를 가렸고 바람까지 솔솔 불어주니 산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 같다.
지형도를 펼쳐본다. 진고개가 해발970m, 동대산이 1433m 도상거리로 1.5km이다. 즉 1.5km의 거리에 고도 차가 460m이니 소요시간이 1시간 30분이 되겠다. 첫 스타트부터 가파른 길이니 보폭을 좁히며 천천히 쉬지 않고 걸어본다. 출발한지 60분 동대산 1433m의 이정표가 나타난다. 소요시간과 두로봉까지의 거리를 메모하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동대산 헬기장을 넘어 두로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동대산을 출발한지 1시간 10분만에 차돌바위에 도착하였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벗어질 듯하던 구름이 심상치 않게 짙어 가니 기분이 얹잖아진다.
차돌바위를 지난지 1시간 33분 2시 23분에 두로봉에 도착하였다. 동대산에서의 거리가 7km, 산행 출발지인 진고개로부터 8.5km에 3시간 50분이 소요됐다. 오늘의 목적지인 신배령까지는 3.5km가 남았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1시간 거리에 북대사(미륵암)가 있다.
44년전 1956년 7월 하순, 어느 날 밤의 오대산 등반시의 사건이 떠오른다. 姜君 등 초등학교 친구 4명과 함께 오대산 등반에 나선 우리 일행은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에 상원사를 향하여 월정사 앞을 출발하였다. 선두는 전 년에 왔던 경험이 있는 姜君이 섰다. 밤 9시경 칠흑같은 밤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앞선 친구만 바짝 쫓는다. 계곡 건너편에는 여러 사람이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에 말도 못 부치고 지나쳐 간다. 얼마 후 이들이 우리 일행을 황급히 뒤쫓아 왔다. 우리 일행은 가던 발길을 멈추고 그들 앞으로 다가서려 하자 그들 중 몇 명이 뒷걸음으로 물러서며 소총의 노리쇠를 후퇴시키고 우리 일행을 겨누면서 이 밤중에 어디를 가는 누구냐고 묻는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상원사까지 가는 등반객이라고 태연히 대답한다. 그러나 우리는 상원사 갈림길을 지나쳐 북대사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 당시 북대사는 전 해 가을에 주지 스님의 피살로 빈 절로 있었음.) 오대산 잠복근무를 위해 상원사로 가던 평창경찰서 대원 4명과 주민이 우리 일행을 공비로 오인하고 우리를 쫓아 왔던 것이다. 천만 다행으로 우리들은 길을 바로잡아 경찰아저씨들과 같이 상원사로 올라가 늦은 저녁을 함께 하였다.
그때의 상원사, 북대사(지금의 미륵암) 적멸보궁, 비로봉, 상왕봉, 사고사 등등.... 그려본다.
떡과 강정으로 요기를 한다. 비구름이 잔뜩 낀 서쪽 하늘에서는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빗방울이 잦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판초를 뒤집어쓰고 신배령을 향하여 출발한다. 내리막 길이 계속 이어져 힘은 덜 드나 비로 인해 산길이 미끄러워 조심스럽다.
빗속의 강행군!
온 몸이 안팎으로 땀 범벅 빗물 범벅. 판초자락으로 흐르는 빗물은 바지를 적시고 등산화 발목으로 스며들어 질척거린다. 이윽고 막영지인 시비령에 다다랐다. 시간은 오후 5시. 숨도 돌리지 않고 빗속을 2시간 달려온 것이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2시간 후면 어두워 질 터인데 우중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해야 할지, 아니면 조개골로 내려가 민가를 찾아야 할지 망설인다.
20-30분 지났을까? 서편 하늘에 구름이 벗어지며 빗줄기가 줄어들더니 뜸해진다. 흘린 땀이 식으니 한기가 엄습한다. 이익효고문이 버너를 꺼내 불을 피고 수통에 남은 물을 모아 끓이고 북어국을 끓여 마시니 살 것 같다. 이승옥씨와 이 고문이 물주머니와 코펠을 들고 물을 뜨러 조개골 쪽으로 내려간 사이 나는 텐트를 치고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짐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려 Rain Fly를 두고 온 것을 후회한다. 대용으로 판초를 덧씌우니 많은 비만오지 않으면 잠자리는 별 걱정을 안 해도 되겠다.
두 친구가 물을 길어왔다. 진무에서 사온 돼지 항정을 안주로 후라이펜에 구워 위스키와 소주를 몇 잔씩 돌리니 추위가 싹 가신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드니 밤 9시 제발 큰 비는 오지 말아야 할텐데...
침구가 시원치 않아 추워서 잠을 깼다. 새벽 1시 17분 하늘엔 별이 총총 구름 한 점 없이 개였다. 여벌의 옷을 챙겨 입고 마음놓고 다시 잠을 청한다.
새벽 5시. 오늘 새벽 4시경 출발예정인 본 대와의 통화를 위해 휴대전화를 열었더니 배터리가 다 되어 불통이다. 5시 뉴스에 서울기온 16.4℃, 내륙지방 곳에 따라 소나기 우박 돌풍이란다. 동쪽 산과 바다는 솜같이 운해에 묻혀있다. 이승옥 동문은 날씨가 좋아지겠다며 기분이 좋은 표정이다.
산우회 전 회장 이익효고문은 환갑 진갑을 지낸 나이에도 세 사람 중 막내(?)가 되어 단지 후배라는 이유로 취사에 설거지를 도맡아 한다. 쓰레기 봉투까지 자기 몫이라고 챙긴다. 선배들에게 깍듯하고 후배를 극진히 아끼는 성품이 존경스럽다. 백두대간 산행의 즐거움은 이런 데도 있었다. 우리 서울고 동문 산우들은 이러한 정신과 전통이 배었으면 한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출발준비를 서두른다. 젖은 옷에 젖은 텐트를 꾸리니 가벼워야 할 짐이 더욱 무겁다. "아침 7시 30분 출발" 쪽지를 남기고 응복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8시경 ⁘1210봉을 지나 만월봉을 향했다. 짙은 가스로 시계가 좋지 않으나 등산로는 뚜렷하여 진행방위각만 확인하면서 전진하였다. 응복산에 도착한 것은 9시 11분이다. 남쪽으로 두로봉, 상왕봉, 비로봉 등 오대산의 연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10분간 휴식을 취한 일행은 마지막 봉우리인 약수산을 향한다. 반갑지 않은 내리막길이 35분이나 계속된다. 고도계는 300m나 내려갔다. 출발한지 3시간여 ⁘1260봉을 오르던 중 12회 후배가 따라왔다.
오르막길을 계속하여 ⁘1280봉에 올라서니 11시 5분이다. 짐을 내리고 20분간을 쉬었다가 마지막 봉우리 약수산으로 향한다. 이제부터 힘들다는 마지막 오르막구간이다. 도상거리로 1.6km 예정대로라면 1시간이면 ⁘1306봉에 도달할 것이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 능선과 약수산. 우리는 힘겹게 가파른 길을 오르고 또 올라 드디어 삼각점이 박혀 있는 ⁘1306(약수산)봉 정상에 도달한 것이다. 도착시간은 12시 17분.
비에 젖은 텐트, 판초, 내복 등을 꺼내어 널어놓고 뒤따라 도착한 후배들과 마시다 남은 위스키로 축배를 들고 뒤따라 올라온 아내와 함께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30여분 내려서니 구룡령. 화장실에 둘러 옷을 갈아입고 휴게소에 들어서니 먼저와 있던 후배 산우들이 반갑게 맞으며 시원한 맥주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