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39구간: 삽당령-화란봉-닭목재

2000년 3월 26일

김관석 (26회)

2000년을 맞이하여 처음 가는 백두대간 산행이다. 아, 겨울동안 얼마나 백두대간 산행이 재개되기를 기다렸던가? 하지만 장헌수 백두대간 등반대장께서 이틀전 모친상을 당해 못나오셨다. 그리고 부등반대장인 이선길형도 따라서 안나왔다. 나는 장헌수 선배님 없이 오늘 혼자서 선두에 서야 하는 날이다. 문제가 없을까하는 걱정이 앞서서 그랬는지 올해 백두대간 첫 산행이라 그랬는지 잠을 설쳐서 오늘따라 늦잠을 잤다. 그래서 6시30분 출발인데 5분 이상 지각을 해서 다른 분들에게 죄송했다. 그렇지만 공교롭게 버스들도 10여분 늦게 도착하였다. 어쨌든 여러분들께서 반기신다. 근래에 동문 산우회에서 해외산행으로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같이 다녀오신 이승옥 선배님께서는 고맙게도 거기서 찍은 비디오 테이프를 주셨다. 정말로 산행에 열중하시는 노선배님이시다. 오늘도 여는 때와 마찬가지로 두 대의 버스에 최치석선배님의 지시에 따라 기수 별로 나누어 탔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꽤 많았다. 아마도 오늘 산행이 쉬워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삽당령에 도착하여 최치석선배로부터 무전기를 받고 출발한 시간은 10시였다. 얇은 셔츠와 팔 없는 조끼를 입었더니 조금 쌀쌀하게 느껴진다. 반면에 내가 보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옷을 껴입고 있었다. 우리는 보통 1시간을 가야 쉬니 중간에 땀이 나면 선두는 옷 갈아 입을 시간도 없으니 말이다. 시작하는 곳에 관청에서 세운 백두대간 산행 안내 게시판이 있더니 산길도 누군가가 손을 본 것 같다. 지나치게 다듬어진 느낌이다. 월간 {산}이 발행한 백두대간 종주산행에는 산행시간이 애매하게 써있었다. 코스도 임도를 따라서 가라고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리본을 보고 작은 야산길을 갔다. 한참 가니 임도를 만났는데 건너가도록 리본이 매어 있었다. 고만고만한 흙길에는 낙엽이 깔려 있었고 간혹 얼음이 밑에 숨어있기도 했다. 아! 포근한 산책길이다. 한 손에는 지도를 들고 목에 건 나침반을 계속 확인하면서 걸어갔다. 만일을 위해 오른쪽 어깨에 걸은 GPS를 미리 켜 두었다.

아마도 여기에 GPS 스토리를 이야기 해야 할 것 같다. 백두대간 초기에 13회 선배님들께서 미국에 사시는 동기 김명준 선배님이 길을 잘 찾으라고 GPS를 받았다고 했다. 그 신기한 기계를 연구한 바, 미국에 사시던 분도 못 다루겠다고 했다. GPS란 Global Pointing System의 약자로 위성항법장치라도 한다. 그것은 12개의 인공위성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현재의 지점을 위도와 경도로서 계산하여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기계인 것이다. GPS를 연구하여 몇 번을 헷갈리는 길을 찾아내었다. 그래서 의례히 나는 GPS를 들고 등반대장과 함께 선두에 서는 것이다. 왼쪽 어깨에는 워키토기, 오른쪽 어깨에는 GPS. 그래서 20-30m 오차로 특정 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처음 가는 길이라도 앞장서서 등반대장과 함께 찾아보는 것이다. 물론 우천시를 대비해 얇은 비닐에 싼 자세한 지형도와 나침반도 필수로 갖고 다닌다. 그렇지만 이미 많이 붙은 백두대간 리본이 가장 쉬운 길 찾는 수단이기는 하다.

앞장서서 출발을 하니 몇몇 사람들이 너무 빨리 가는 게 아니냐는 뒷소리가 많다. 아마 막내 후배가 혼자서 앞장서니 투정부리시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내가 페이스 조절을 잘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전에도 장헌수 대장님이 빠지시면 나에게 선두가 너무 빠르다는 말을 하시는데 내가 보기에는 평상시에 느낀 바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선두를 서는 입장에서는 전체를 어느 정도는 속도를 내게 하지 않으면 예정된 일정을 못 맞추게 된다는 생각이 있는 법이다.

출발 후 2시간 정도가 지나 약간 가파른 곳을 오르니 석두봉(982m)이다. 시야가 트여 경치가 제법 좋다. 가슴이 모처럼 후련하다. 풍경사진을 몇 장 찍고 있는 데 옆에 있던 규도형이 카메라를 건네며 자기 얼굴도 찍어 달라고 하였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거의 쉬지도 않고 지나간다. 나는 풍경 사진을 찍던 안 찍던 경치가 좋은 곳에서 쉬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날씨가 안 좋으면 다른 사람들은 꼭 경치가 없는 우묵한 곳에서 쉬기를 좋아한다. 오늘도 결국 길을 가늠하기 위해 가끔 GPS를 보아야 했다. 항상 그렇듯이 길이 고만고만하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정말 힘들은 것이다. GPS가 30m 정도의 오차를 보이며 석두봉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석두봉 아래 5분정도 간 거리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바람 안부는 장소였다. 정재우 단장님께서 같이 먹자고 부르셨다. 단장님 부부와 같이 오는 정용순, 이경자 두사람과 명륭이형과 같이 점심을 먹는데 고기 반찬이랑 후식들이 너무 맛있어 좋았다. 35분 정도 식사를 한 후 출발하였다. 1006미터봉 바로 아래서 비교적 가파르기는 했는데 뒤에서 쉬자는 소리가 있음에도 조금만 더가면 경치 좋은 곳이 나올까 하는 욕심에 가다가 결국은 한시간 5분 정도 가서 쉬게 되었다. 그러자 단장님께서 곧장 쫓아오셔서 너무 빠르고 55분 운행하면 쉬어야 하는데 하는 야단과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후미와 교신해보니 20분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단장님께서는 엄격하시고 산행 경험이 많은 분이라 야단이 매섭게 느껴진다.

화란봉은 1069미터로 오늘 산행중 가장 높은 곳이 되는데 이곳으로 오르는 비탈이 제법 가팔랐지만 1006미터봉에서 빠른 걸음으로 2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닭목재까지는 40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어서 김승남 선배님이 주시는 정상주를 부담없이 받아 마셨다. 산에 왔으니 하산은 서둘 필요가 없다. 허리가 아프다는 동기 권용기도 잘 오고 있다는 교신이다. 후미와의 차이는 약30분 이상 나고 있으니 일부러라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쉬었다.

충분히 머물렀다 싶은 후 화란봉에서 내려오는데 성두섭형을 만났다. 길옆에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앉아서 기(氣)를 받고 있으며 우리도 받으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단원들 중에서 별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기의 존재를 믿으며 의술에게까지 연관시킨다. 10여분을 더 내려가니 양지바른 무덤가에 선배들이 모여있어 첫 산행기념으로 한 장 찍었다. 내 카메라는 슬라이드 필름을 넣고 다녀 특별한 경우 아니면 인화하기가 곤란하지만 스캐닝해서 인터넷에 홈페이지에 싣기 위한 용도이다. 두섭이형이 와서 또 기공 이야기를 하길래 믿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이 년전에 삐끗한 허리에 기공을 행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무덤 아래쪽으로 누우라 하더니 꽤 아프게 누르고 꺾어댄다. 그래서 나는 작은 비명을 질러댈 수 밖에 없었다. 약간 웃음도 나왔다. 그러자 옆에 계시던 이익효고문님 말씀이 들린다. "야, 두섭이한테 몸을 맏기는 무모한 사람도 있다"고 놀려대셨다. 그래서 모두들 무덤가에서 웃어댔다.

닭목재에 내려오니 3시25분 경이었다. 헌병감으로 자처하시는 김일웅 선배님과 몇 사람들이 화란봉에만 올라가고 내려와 동네 마을로 가서 청산별곡주라는 동동주를 한 궤짝 사다 놓으셨다. 오늘은 모두 지치지 않고 잘 내려왔다. 아마 이제까지 중 가장 수월했던 구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장헌수 대장님 없이 혼자서 선두에 서기에는 무리가 없어 좋았다. 전에 혼자 선두에 있었을 때 구간이 길고 힘들었는지 선배님들의 짜증을 감수한 적이 생각 났다. 한번은 그냥 마음대로 빠른 사람들을 좇아 앞서서 갔다가 뒤에서 일행을 놓친 형수님들이 집단으로 길을 잘못 들었던 적도 있었다.

버스가 오후4시 5분에 출발하였다. 짐작한대로 사람들이 술들을 많이 마신다. 산행이 쉬운 날은 술을 많이 마신다. 산행이 힘들면 잠을 잘 자고. 백두대간 초기에는 돌아오는 버스에서 인사겸으로 술을 따르다가 주는 술 받아 마시고 필름이 끊어진 적도 몇 번 있었다. 사람들이 그때의 증상은 선배님들 말을 막고 떠드는 것이었다고 했다. 친구 권용기의 충고를 듣고 조심도 했고 등산으로 체력이 좋아졌는지 초기 이후로는 필름도 끊어지지 않고 실수도 않게 되었다. 그랬더니 문제는 다른 취한 사람들 쳐다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 한 두사람은 거의 실수를 한다. 어떨 때는 화가 많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는지 이제는 서로 형제간 같아 취해도 미운 실수는 거의 없다.

서울 압구정동에 도착하니 밤9시30분이다. 2000년의 첫 백두대간 산행에 거의 막내 격인 내가 선두로서 60여명과 함께 무사히 다녀온 오늘의 백두대간 산행이 나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