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35구간: 피재-덕항산-댓재

1999년 10월 23일

곽경호(26회)

출발하는 날 동기산우회장 J군과 밤 9시에 만나 소주 2병반을 마시다. J군은 3병째부터 거푸 마시면서 한 말을 되뇌이고 대화의 촛점이 산만해지더군. 변하지 않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하다. DuoBack 의 모조품 단속 차 서울에 올라왔다가 나와의 약속 후 만난 것이다. 검은 양복을 쪼끼와 함께 입었고 재킷을 벗으니 굵은 어깨와 팔 근육이 와이셔츠 안에서 볼륨을 주고 있다.

관석 군과 완순 군에 대하여 말하다. 헤어지고 가다보니 모자가 없다. 다시 찾으러 가다가 현철수, 홍기룡 선배를 마주치다. 포장마차로 들어가 앉으며 오다가 들르라 한다. 잠자기 위해 한잔 걸치려 가는 것일까. 포장마차는 정겹다 저럴 때 지나가다 한 잔하는 그 맛. 出과 入에 비중이 없이 쉽게 앉았다가 빨리 일어날 수 있는 (에라 오늘 포싸롱으로 누굴 불러야지) 그런 곳이다.

산행기를 쓰는 오늘은 10월 29일 정오. 글 속의 시간은 10월 23일 자정이나 며칠 지나 산행기를 쓰는 것은 맛있고 즐겁다. 아침에 25분 간 3일째 학교 운동장을 7바퀴 구보하니 피곤함이 충분한데도 몇 일 전을 상기하며 이 글을 쓰는 것이 편안하면서도 시원하다.

모자 찾아가며 우유 200ml 두 병, 생수 500ml를 사 갖고 버스 앞으로 가니 사람이 별로 없다. 밤 11시 출발인 줄 알았는데 11시 30분이란다. 해일군은 좋겠다. 내일 바다낚시를 가족들과 함께 간다니.

승차후 일찍 잠들었다. 옆의 신기식선배가 깨운다. 새벽 4시 30 분. 먼저 내린 분들이 밖에서 추워한다. 그럭저럭 5시 못미처 피재에서 출발한다. 1시간이 지나도 몸이 warmming up이 안된다. 2시간쯤 되서야 두터운 상의를 벗고 반팔로 갈 수 있었다. 동트기전 아침 노을이 아름답다. 후미 조가 박정일, 김진수, 김인웅, 그리고 나. 헌데 중간에 임도가 연결된 것을 박정일선배가 발견하였고, 그리로 사람들이 갔을 가능성에 높다 했다. 조금 지나 그 쪽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더 가다 보니 야호 소리. 우리도 화답하나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꽤나 멀리서 들린다. 얼마 후 10여 명을 후레쉬로 인도하며 제길로 안내했다. 그후 또 50분이 지나 선두조가 돌아왔다.

아침을 싸오지 못해 이 분 저 분 것을 얻어 먹다. 완순이 반찬은 깻잎, 멸치, 마늘절임 등 아주 담백하다. 그리고 우유 한 곽을 마시다. 가을을 만끽하다. 실컷 낙엽을 밟으며 낙엽 속에 있어 황홀한 기분이 밀려오고 있다. 넘실넘실 산줄기가 겹겹지고 그 너머론 동해시내와 수평선이 보인다. 등대와 선박이 또렷하다. 지하철에서 1000원 주고 산 손전등이 유용했다. 새벽에서 10 시경이 될 때까지 산 사이 골에서 올라오는 물안개가 선명하다. 덕황산, 황장산 모두가 높은 산맥 속의 산인지라 뚜렷한 산의 모습이 없고 맛도 없다. 그만치 우린 높은 산 등줄기를 가는 것이다.

점점 가슴이 북받친다. 우린 다음 두타산, 청옥산을 넘어 강릉시로 넘어 가고, 속초 설악이 기다리고 더 지나 우리의 행군은 끝난다. 다른 곳과 비교되는 절경이 어디인가를 우린 확인할 것이고, 그 자극에 우린 알면서도 또 몸서리칠 것이다. 기다려라 산아.... 우린 신성한 행진이라 여긴다. 그를 거부하는 자를 거부하고 찬양하는 자를 사랑한다. 별 것도 아닌데 어찌 보면 뚜렷한 가치도 없는 일인 것을. 또 어찌보면 삶의 또하나의 형태인데도 막무가내로 좋아한다. 그 이유를 드러내고 분석하고 싶지 않고 현상 그 자체로 남고 싶다.

중간 환선굴에서 올라온 등산객들과 만나다. 포천에서 왔단다. 절벽에 붙은 단풍들이 불타오른다. 김준호선배가 사진찍다. 그위에 평전이 보인다. 색다른 풍경이다. 대단위 고냉지 채소밭이 나타나기 전 점심도 얻어 먹고 가는데 그 중 귤이 참 맛있다. 정영선배가 왼쪽 허벅지 안쪽 속 근육이 쥐나다. 김진수선배와 맛사지를 하고 배낭을 대신 메고 남은 4시간을 가다. 고마와 하시니 민망하다.

버스에서 S선배가 그 위 선배들에게 농담이 너무 지나처 야자 식으로 되면서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깐죽이다. 그 덕에 그 옆자리 구석에 앉은 나는 주목을 덜 받아 술을 덜 받았다. 양명륭선배가 한참 후에 일어나 갑자기 "난 이런 건 못참겠다"며 "첫째, 선후배의 질서, 둘째, 엘리트의식이 없이 막무가내한 행동은 참을 수 없다"고 외친다. 김인웅선배, 성두섭선배 등이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하자 앞자리에 있던 P선배가 그 호색동안을 찡그리며 "어느 놈이 뭐라 하나. 얘가 뭐 틀린말 했냐"며 두둔하며 나서고 그것으로 이 어색한 상황은 끝났다.

승차 전 술자리에서 장헌수, 김진수선배 등 여러분이 계신 자리에서 완순군이 역시 우리 26회 대표라고 추켜 세운 탓인지 버스 안에서 신이 났다. 마이크 들고 사과를 하고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를 나름대로의 창법으로 부른다. 관석이는 앞쪽 떨어진 자리에서 가만히 있고, 용기는 오지 않는다. 의승이도 조용하고 두섭형과 웅배형이 나에게 자꾸 바람을 넣는다. 왜 가만있냐고.

회비는 3만원. 식사는 따로 없고 하산 후 댓재에서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용 가게가 있어 좁쌀 막걸리, 캔 맥주, 소주, 오뎅 등을 먹다. 저녁 5시에 출발해서 7시간 만에 귀경했는데 차라리 반대 방향으로 가서 생선회나 먹고 늦게 막히지 않는 시간에 갔으면 더욱 좋았으리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