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32구간: 박달령-구룡산-곰넘이재

1999년 8월 21-3일

남경희(20회)

가을 씨즌 백두대간 종주를 재개하다. 구룡산 구간이다.

밤 11시 반 출발. 다음날 새벽 3시 반 오전 약수에 도착하여 1시간 가량 잠을 잔 후, 5시에 아침을 먹다. 속이 불안하여 제대로 먹지를 못하다.

6시 출발. 산사태 때문에 봉고차가 박달령까지 올라갈 수 없다 하여 임도를 따라 1시간 걸어 올라가다. 며칠 전의 폭우로 곳곳에 산사태가 나 있었다. 지반이 상당히 무르다. 걷기는 좋은 길이다. 이곳은 한반도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곳답게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다.

후미를 기다린 후 7시 50분 출발, 옥돌봉 또는 옥석산, 도래기재, 구룡산에 12시 반경 도착, 구룡산 오르는 길은 선달산과 비슷하게 1시간 가까이 손과 얼굴을 할퀴는 잡목을 헤치며 계속 오르는 길이다. 언제 이 경사길이 끝날 것인지만을 기다리며 오른다. 그래도 시간이 차면 오르게 될 것이다. 거의 신체를 혹사하는 것임에도 기꺼이 가파른 산을 오른다. 얼굴에서 비오듯 떨어지는 땀방울을 훔쳐대면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등산은 자연상태에서의 동물들의 노동과 같이 먹이를 얻거나 포식자를 피하는 등의 구체적 소득이 없으니, 노동의 본질에 반하는 것임에도 오히려 순수한 노동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킬리만자로을 오를 이유가 있을 것이나, 표범은 눈만 덮힌 그 높은 산을 오를 이유가 없다.

오르는 길에 평지가 단 한 걸음 일미터도 없이 완전한 비탈길이었다. 베테랑들도 오르다 완전히 지쳐 나가떨어진다. 한참을 쉬다가 다시 오른다. 모두들 올라와서는 헥헥거리며 털썩 주저 앉는다. 땀이 뚝뚝 떨어진다. 모든 상념은 사라지고, 철저한 노동, 신체와의 싸움,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다리와 무릎, 그리고 끊임없이 충직하게 펌프질을 해대는 심장, 그 박동소리, 그리고 줄줄 흐르는 땀에서는 나의 신체 내부의 내분비선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신체의 움직임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몸만을 지니고 있다면, 이런 등산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아닌 동물들은 생존의 필요와는 상관이 없는 이런 류의 노동을 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정신을 지닌 인간만이 이런 등산을 하는 것이다. 올라야 한다는 생각이 나의 신체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 그러니 등산은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의지로 하는 것이고 신체를 그 의지를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힘든 등반을 하면서 무념무상이 된다고, 아무 생각도 없다고 하지만, 정말로 힘든 등반에서는 생각으로 걷고 오르는 것이다. 생각이 자신이 오르고자 하는 높은 봉우리로 나의 무거운 다리와 몸을 끌어 올리며 혹사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내용이 없고 단지 지향성, 정상에의 의지만을 지닌, 그야말로 순수의지이다. 단지 이 힘든 노동을 빨리 끝내고 정상에 오르겠다는 생각만으로 오른다. 이런 점에서 가파른 산을 오르면서의 생각은 지극히 단순화 되어 있고, 오르겠다는 의지 이외에는 들어설 틈이 없다는 점에서 무념무상이랄 수 있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나는 간혹 가파른 산의 등산은 禪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참선을 하는 경우에도 단 하나의 생각, 모든 생각을 단념하겠다는 생각만은 있다. 물론 경지에 오르면 그런 생각도 없어질 것이기는 하나.

대간을 오르면서는 이런 고된 체험을 많이 한다. 눈과 얼음이 덮힌 회양산의 절벽길에서 나무뿌리와 밧줄을 잡고 오르며 다리가 후들거렸던 기억, 또 조령산 하산길 절벽에서 밧줄에 매달려 동기녀석이 비명을 지르고 모두들 내려가지도 오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난감해 하던 기억들이 새롭다. 그리고 나서 과연 이렇게 험한 대간 주행을 할 수 있을 것인지 회의를 갖으며, 지도을 보고 등반기록서를 읽으며 열심히 연구하며, 계속할지의 여부를 가늠하기도 했던 것이지만.

등산은 이 맛으로 하는 것이리라. 자신의 인내력과 담력과 지구력을 시험하며, 몸과 마음이 지탱할 수 있는 한계까지 버티어 가면서, 의지력으로 종주능선을 완주할 때의 성취감, 그리고서 부는 바람에 땀을 식히면서 쉬는 기분 때문에 등산을 하는 것이다.

구룡산에서 점심겸 간식, 나는 속도 좋치 않아 간식으로 때우다. 선배분들이 휴대용 냉장고에 싸온 칵테일이며 맥주, 그리고 정상주를 한잔씩 안기며 선후배 동문들에게 정성을 베푼다.

구룡산 내려가는 길 역시 온통 얼굴, 손을 긁어대는 잡목들이다. 길은 겨우 나있으나, 백두대간을 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곰넘이재에 2시 도착, 1시간 가량 내려와 봉화, 애당마을에 3시 도착하다. 하산길 역시 오지답게 한적한 계곡길이 길게 뻗어 있다. 하산 중간 계곡에서 옷을 다 벗어던지고 차가운 물에 들어앉아 호젖하게 목욕을 하다. 여름의 땀을 모두 씻어보내는 기분이다. 내려오니 계곡 옆 간이 정자에서 맥주들을 마시고 있다. 가게는 없었으나 생각 깊은 후배가 미리 내려와 아래 마을에 가 장을 봐온 모양이다. 한참을 유유하게 목욕까지 하며 내려왔는데, 10여인만이 내려와 있다. 1시간여를 기다리다 3명이 사고가 났다는 소식, 쥐가 나서 걷지를 못해, 마을에서 트럭을 수소문하여 올려 보내다.

봉화군 애당 마을로 내려와 후미를 기다리며 술을 마시고 라면으로 식사를 하다. 아침도 시원치 않은데다 점심도 거의 굶었고, 7-8시간의 산행 후이었으니 라면맛은 그 어떤 요리보다 맛있었다. 게다가 시원스런 토란잎이 추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시골의 앞마당이라. 아주 오랜만에 초간장에 담근 양파장아치를 먹어보다.

우리가 라면상을 벌이고 있었더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 들어 멍석 한 자리를 만들어 술과 이야기판이다. 그런 모습들이 재미있고 흥겹다.

백두대간 종주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백두대간 종주는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산행의 방식일 것이다. 이렇게 한 줄기 대간이 국토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그 능선이나 봉우리가 사람들의 접근을 허용하는 그런 나라는 흔치 않을 것이다. 대간은, 홀로 있으면 이름 없이 존재했을 많은 봉우리들을 대간에 끼어 이름을 얻게 하고 사람의 방문을 기다리게 하는 너그러움을 지니고 있다.

능선을 끝까지 가, 다음 구간의 능선과 이어야 하므로, 보통의 산행보다 길고 힘이 들다. 대간을 타다 보면 산넘어 산 그 넘어 또 산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한반도, 특히 대간의 주변에는 그렇게 산이 많으며, 능선은 봉우리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간 종주는 첩첩의 산중을 가는 것이어서 외로울 듯하나, 곳곳에서 새로운 능선들이 나타나 내가 달리는 대간길에 동반해주고 있으며, 가끔은 만나서 봉우리를 이루기도 하기 때문에 한국 산들의 능선은 외롭지 않다. 그래서 마치 산들을 벗삼아 함께 등반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도 그러하리라. 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종주를 하고 있기는 하나, 나의 눈에 더 깊이 들어오고 내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 동료들이라기보다는 산들이므로.

방금 산을 달린다 했으나, 실제로는 능선의 인도를 받아 힘들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락 내리락 하며 걷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간을 걷다보면 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남에서 북까지 선을 이어서 걷는 형국이 마치 열심히 달려야만이 다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실제 마음으로도 달리는 마음으로 걷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번 팀원들은 모두 베테랑들이어서 그런지 1-2 시간 이상을 달린 후에야 쉬는 강행군을 하니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형국이다.

밤새 달려와 잠도 설친채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밤새 달려와 하는 대간 산행이 피곤한 스케줄이기는 하나, 새벽산행의 묘미를 맛보게 한다. 대간 종주를 하면서 비로서 나는 새벽산행의 묘미를 알게 되었고, 더 깊은 산의 맛을 보고 산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의 시작, 생명의 낭낭함을 알리는 새소리들, 풀의 향기, 잡목들이나 억새잎마저 영롱하게 하는 이슬, 아침 태양이 나무 사이로 쏟아대는 햇살.

한국 지형의 특징을 잘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산행이다. 한국의 산이 마을과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보통의 산행과는 달리 고개를 무수히 많이 넘는다. 대간이 지리상의 등산로, 자연의 일부인 것과는 달리, 대간을 가로지르는 고개는 사람의 길, 마을의 일부이다. 대간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능선임에 비해, 고개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통신망이다. 산은 능선으로 오르다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으면 봉우리가 된다.

백두대간을 하다보면, 미내치, 갈곳산, 늦은목이 등 특이한 이름의 지명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다 유래와 역사가 있을 것이다. 그 이름의 역사에는 사람살이의 사연과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어떤 지명이건 사람이 살면서 붙인 것이기에 단지 땅만을 물리적으로 보고 붙인 이름은 없다. 산의 물리적인 모습은 여러 가지, 무수히 많기에 그런 식으로는 산이나 고개는 물론 그 무엇의 이름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나름의 사연과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백두대간의 묘미는 수많은 고갯길을 가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연속 종주가 아니라, 일주일, 이주일 단위로 서울을 오가면 백두대간을 종주하다 보면 중간 고갯길을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를 낭비라 생각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런 식으로 대간을 따라 오르는 것이 살아있는 백두대간을 체험하는 것,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 대간을 접하는 것이다. 고갯길은 넘나드는 사람들이 없으며, 대간 주위에 마을 형성되어 서로 교류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면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발길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의 산들이 산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함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다. 백두대간은 우리 땅을 사랑하는 독특하고 풍부한 방식, 그리고 상당한 노동력의 공을 들이는 방식이다.

그 고개 초입의 마을들을 무수히 방문하여, 새벽에는 국 한그릇을 얻어먹고 오후면 내려와 여유가 있으면 계곡에서 목욕을 하고, 그 아래 마을에서 멍석을 깔고 술을 한잔 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갖는다. 지난번의 오전약수, 애당마을. 등. 이런 곳에서 자리를 펴고 술 한잔 하는 기회를 일부러는 갖을 수 없다. 누가 술 한잔 하러 이 오지를 일부러 방문하겠는가?

등산 후의 식사자리나 상경길의 버스 안에서는 흥겹고 정겨운 뒷풀이판이 벌어진다. 40에서 60까지의 동문들이 마치 10대 후반의 고등학생들 처럼 격식을 느슨하게 하고서 편안한 기분으로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술을 주고받는다. 그럴 때면 각자들 비장의 술들을 꺼내 놓는데, 술들의 종류가 다양하기 그지없다. 정상주로 마시는 양주에 소주, 맥주는 기본이고, 인삼주, 매실주, 구기자술, 즉석의 더덕주, 막걸리, 와인 쿨러, 레몬소주. 소맥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이름도 근사한 막사이사이는 탁하고 무거운 막걸리와 맑고 탄산가스로 가벼운 사이다를 혼합한 것이다. 주고 받는 술들 중 우리를 가장 취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갖가지 술에 선후배의 정을 섞어 주는 동문칵테일일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식사하거나 술을 함께 마실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선후배 동문들과의 식사나 술자리는 그 어떤 모임보다도 흔쾌하고 기분 좋은 자리이었다. 산에 대한 열정을 지닌 마음들이니 순수하고 호쾌하기도 하거니와, 동문들이니 마음의 혁대나 넥타이를 조금은 풀어놓고 허물없는 말투를 주고 받을 수 있다. 선후배가 연장자나 연소자로서가 아니라 형님과 동생으로, 무공해 화제인 등산에서의 무용담을 안주 삼아 술과 정을 주고받는 모습은 2-3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교시절도 되돌아 간 듯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