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30-31구간: 죽령-소백산 비로봉-박달령

1999년 6월 28일(월)

이승옥(8회)

청량리역에서 밤 10시반 발, 강릉 종착역인 단양행 열차표를 사고 손가락 만한 battery 10개를 샀다. 기차를 타고 졸고 앉아 있으니 어느덧 새벽 2시 반이 되어 단양 역에 도착하여 택시로 25분 가서 3시경에 죽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한여름에 안개구름이 잔뜩 낀 시멘트 포장도로 30여분 오르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풀잎에는 이슬이 잔뜩 맺혔다. 바람 속에는 가는 빗방울도 섞인 듯했다.

새벽녘에 반딧불 떼가 가끔 오가는 것도 신기하였다. 그리고 숲 속에서 박쥐인가 무슨 동물이 인기척을 듣고 후닥닥 놀라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 제2 연화봉 중계소에서 개 짖는 소리가 섬뜻 신경을 곤두서게 하였다. 제2 연화봉 천체관측소 제1 연화봉을 지나니 바람이 약간 줄어들고 동이 트기 시작하였으나 비로봉과 국망봉 사이에는 다시 바람이 세어서 여름산행인데도 어느 순간에는 오싹 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큰 나무 하나 없이 낮은 고산식물뿐인 평원 같은 길을 힘내어 걸어 비로봉 정상 1439m에 올라 긴 숨 몰아쉬고 지나온 능선과 앞으로 갈 연봉들을 바라보며 국망봉을 지나 상월봉에 오르니 아직 구름 속에 잠겨있고 발아래 풍기는 구름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순식간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 산길 바닥에 앉아 아침이랄까 간식을 먹었다.

해발 1300-1400m 능선을 오르내리는 아기자기한 산봉우리는 위치와 모양에 따라 천태만상의 장관을 이루었다. 크고 작은 봉우리와 바위들이 침묵 속에 조용히 무엇을 속삭이는 것 같았다.

상월봉과 늦은맥이재를 지나니 아주 지루한 높고 낮은 능선 산행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차라리 하나의 넓은 정원과 같이 아늑하였다. 10시 30분 경에 늦은매기재에서 마당치를 향해 가는데 어떤 젊은이를 만났다. 물 있는 곳은 고치령까지 가려면 2시간 가량 걸리는데 물이 필요하면 주겠다고 친절을 베풀었다.

12시 반경 고치령 샘물 앞에서 점심을 먹는데 비포장도로에 지나가는 차마다 서면서 버스 정류소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하였다. 너무나 고마운 편승 인심이었다. 600cc 물병 2개를 채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몸도 약간 지치고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옷이 흠뻑 젖었는데 바지의 물이 흘러들어 양말과 신발까지도 젖었다. 900m-1000m 봉우리를 계속 오르내리는데 몸이 너무 지쳐서 간식도 안 먹히고 먹고 싶은 것은 오직 물뿐이었다. 4시간만에 물도 다 떨어지고 이제는 물을 찾을 때까지 어느 만큼 계곡을 내려가야 할 판이었다. 갈증을 억지로 참고 두어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갈곶산을 넘어 늦은목이에 터벅터벅 내려가니 기진맥진하였다.

우선 물을 찾아야 하는데 먼저 갔던 우리 일행도 이곳에서 물을 찾지 못했다고 하였다. 물 있는데까지 계곡을 내려갈 각오를 하고 물이 있다는 서쪽으로 내려갔다. 벌써 8시가 넘으니 어둡기 시작하는데 헤매며 풀숲을 지나면서 200m쯤 가니까 어데 선가 아주 작은 청개구리가 풀잎에 와 앉았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쳐다보면서 근처에 물이 있다는 감을 잡았다. 주위를 샅샅이 살피니 어디선가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대나무 숲 사이로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댓잎을 따서 물길을 끌어놓고 한참 있다가 물이 맑아진 듯하여 물을 받아 가지고 길목에 와서 손전등을 켜고 저녁을 먹고 다시 북쪽으로 선달산으로 향했다. 선달산 중턱에 다다르니 다시 물도 떨어지고 지쳐서 몇 번이고 누었다가 가고는 했다. 이제부터는 휴대전화기도 불통이다. 언덕은 가파른데 선달산에 오르니 밤 11시가 넘었다.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지쳐서 쉬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 듯하였다.

선달산에서 북동으로 15분 가다가 동남으로 쭉 1시간 반이나 오르내리면서 12시 반경에 박달령에 다다르고 샛길 언덕 계곡으로 내려와 오전약수 물공장에 도착하니 이튿날 새벽 1시 30분이었다. 여관, 호텔, 여인숙의 간판을 보고 문을 두드려도 들어가 보아도 숙박을 거절하였다. 혹시 라면을 팔거나 맥주나 음료수를 파는 곳이 있으면 사먹고 싶었으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약수터를 찾아 물로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우고 할 수 없이 음식점 마당 앞에 놓여있는 평상에 침낭을 펴고 잠을 청하였으나 깊은 잠을 잘수 없었다. 약간 잠이 들다 깨어보니 새벽 4시 반이 되어 훤히 밝기 시작하였다. 잠도 안 오고 하여 일어나 다시 샘터에 물을 먹으러 갔다.

샘터에서 어떤 젊은이를 만났다. 봉화나 영주 가는 버스가 몇 시에 오느냐, 어디서 타느냐고 물으니 8시나 되어야 첫차가 온다고 하였다. 내 몰골이 피로해 보이고 좀 거북해 보였던지 어떻게 이 새벽에 약수를 드시러 오셨느냐고, 어디서 오셨느냐고, 무엇 때문에 왔느냐고 꼬치꼬치 묻기에 대답해주니 아저씨 직업이 무엇이냐면서 주민 등록증을 보자고 하였다. 직업이 없고 깊은 밤에 생각할 수도 없는 50km 이상 되는 먼 산길로 혼자서 온 데다가 주민등록증도 없이 노지에서 밤을 지세웠으니, 게다가 상세한 지도 복사본에 좋은 나침판을 갖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로 수상하게 여긴 모양이었다.

"아저씨 제가 영주에 가니까 가는 길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침식사도 안 잡수셨을 터이니 아침은 제가 사겠습니다. 그러나 영주에 가시면 저하고 잠깐 어디를 가셔야 하겠습니다. 갈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영주경찰서에 가서 신분을 확인하셔야 하겠습니다"한다. "좋습니다. 나는 어젯밤 11시부터 산행 중에 휴대전화기가 불통이고 이곳에 와서도 동전이 없어 공중전화를 못하고 걱정을 하던 중인데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전화해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지요. 여보시오 나처럼 머리가 하얀 사람도 간첩이 있소!" 배낭을 가져오려고 평상으로 가니 내가 가는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감시하고 있는 꼴이었다.

아침을 먹으러 음식점에 들어가 보니 자기 상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닭죽을 같이 먹고 영주로 가는 길에 주실령을 넘어가니 휴대폰이 터져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안심시키고 젊은 친구에게 우리 집과 통화하게 하여주었다. 그때서야 신분이 확인되니 의심을 하여 죄송하다고 여러 번 사과를 하였다.

그리고 고개 밑에 있는 두내라는 마을에서 탄산과 철분이 함유된 약수를 마시고 영주고속버스 터미날까지 태워주고 헤어졌다. 8시 고속버스를 타고 차 속에서 내다보니 내가 지난 능선이 (묘적봉 도솔봉) 제2연화봉 천체관측소 제1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상월봉 갈곶산 선달산으로 이어지면서 파노라마처럼 쫙 보였다. 백리가 넘는 산길을 혼자 당일에 걸었다고 생각하니 대견하고 감개무량하였다.

썬글라스를 쓰지 않고서는 쳐다보기도 힘들게 휘황찬란한 산봉우리와 능선을 거치고 깊숙한 안부를 지나며 어둠컴컴한 울창한 숲속의 계곡을 내려다보고, 이상한 바위를 딛고 맑은 샘물가에 내려가 마실 물을 보충하며 백두산을 향해 백두대간을 왔다.

이름 모르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푸른 잔디를 밟으며 정정한 나무를 올려보고 온갖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뭍짐승들이 판 땅의 구덩이를 넘어서 왔다.

발밑의 절벽을 내려다보며 공포의 감정을 느끼면서 능선을 지나며, 높고 험한 정상을 바라보고 대망과 도전의 충동을 받고 용기를 내어 어려움과 괴로움을 이기며 인내심과 극기력으로 정상에 오르면, 승리의 감격과 정복의 환희를 맛보며 서로 정상에 오른 기쁨을 참을수가 없어 정상주를 한잔씩 나누며 기쁨을 나누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어느곳에 가 보아도 병풍같은 산들이 우리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시간이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산에 오를수 있는 것이 우리의 환경이다.

시원한 약수 한 그릇을 마시며 정신이 바짝 나서 바라보는 산과 계곡은 세속에 빠진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깨끗하게 씻고 비우는 것 같았다. 대자연의 신비로운 품속에 안겨 꽃과 나무, 오솔길과 약수터, 산 소리와 물소리와 바람소리와 새소리의 조화를 만끽할수 있으니 심신의 건강과 조화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시간이 나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으러 등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