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27구간: 하늘재-포암산-대미산-작은차갓재

1999년 4월 11일(일)

이규도(22회)

신라의 마지막 황태자 마의태자에 대한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은 많다. 하늘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사적 317호 미륵사지(보물 95호 5층석탑외 다수)도 그 중에 하나이며,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끄는 거대한 검은 돌거북이 있다. 천년 왕국의 몰락을 지켜보며 어찌 비애와 한탄이 없었겠는가? 화려한 옛 왕국의 부활을 꿈꾸며 이 거대한 돌거북을 앉혀 놓았으리라! 그러나 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미륵은 나타나지 않았고, 신라는 다시 부활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 천년이 지난 후에도 미륵은 나타나지 않을 지도 모르고, 신라는 부활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돌거북은 그래도 세월을 기다릴 것이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그 돌거북을 바라보며, 각자 나름대로의 의미와 해석을 새겨 보는 것만으로도 천년을 넘게 한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돌거북의 역할은 충분하였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새벽 6시경 옛날 마의태자도 오르내렸을 하늘재로 가는 숲속 길은 간밤에 내린 비로 주변의 나뭇잎은 제법 파릇파릇하고 개울가 물소리도 정겹고 공기는 신선하고 청아하였다. 산행하기에는 그저 그만인 날씨였다. 하늘재에서 포암산(961.8m)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이 만만치 않았다. 산성터의 폐허의 잔해를 거치고 오르는 길목 '하늘샘'에서 한모금 목추기며 50분가량 오르니 포함산 정상이다. 북쪽으로 월악산 암봉의 위용이 시야에 들어오고, 남쪽으로 주흘산의 혹부리같은 봉우리들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북동쪽으로 난 대간길은 938.3봉까지 능선이 아름다웠다. 좌우의 경관도 좋고 봄바람 살랑이는 것이 날아 갈 듯 상쾌하여 한없이 내닫고 싶은 기분이었고 대미산까지 단숨에 갈 것 같았다. 844봉 부근에선 남서쪽 주흘산 봉우리, 수목사이로 보이는 월악산 전경이 너무 좋아 사진도 찍고 한참이나 머물며 요란을 떨었다. 그러나, 1032봉-1034봉-부리기재-대미산까지의 길고 긴 오르내리막 능선길이 너무 좋았던 게 방심일까? 아니면 지난주 내내 문상에 지방을 다니느라 누적된 피로의 탓일까? 부리기재에서 대미산(1115m) 오르는 도중, 다리에 이상 조짐을 느꼈다. 간신히 대미산 정상에 오르니 다리에 쥐가 나고 다리 근육이 돌덩이처럼 굳어 갔다. 정상에서 멋진 사진 찍는 것은 접어 두고, 침으로 손가락따니 검붉은 피가 홍건히 나왔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도움을 청하니 야속한(?) 22회 동료들은 괜시리 엄살을 부린다며 힐란 하며 점심을 먹자마자 베낭을 챙기고 바람처럼 가 버린다.

후미로 처지니 못난 것 같고(이제까지 대간 길에 후미에 많이 처졌으니 새삼스러울 게 없는 데도)다리를 절뚝거리니, 여상구. 이선길 선배는 안타까운 듯 몇번이나 다리를 주물러 주고 근육을 풀어 주었으나 별무 효과였다. 대미산에서 바라본 차갓재로 이어진 그림같은 능선이 아마득하게만 보였다. 허기도 지고 몇 번이나 펄썩 주저앉고 싶은 마음에, 왜 백두대간을 시작했는지 후회도 되고 회의도 일어났다. 그렇지만 내려가야 할 길이고, 이만한 각오 한두번 이었던가. 문득 70년대 어려웠던 시절, 80년 후반기 고생하며 전전했던 아련한 기억들이 새삼 봄바람에 막 스쳐 지나간다.

간신히 차갓재에 이르렀으나 작은차갓재의 완만한 오르막이 오늘은 왜 그리 힘드는지 ...... 베창골로 내려 설 때는 끝까지 옆에서 동행하며 지켜 봐주던 후배 상영이도 더 이상 답답하고 못 참겠다는 듯 먼저 내려 가 버렸다. 나무를 잡아보기도 하고, 거꾸로 내려가 보기도 하면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가까스로 베창골 안산다리(고느적한 산골마을이었다.)에 도착하니 모두들 씻고 쉬고 있었다. 나만 내려오면 막 출발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맨 꼴찌로 내려 온 주제에 머리에 물을 추길 수 있는 것만도 얼마나 감지덕지인가! 선배들의 배려가 고마웠다. 이런 상태로 과연 백두대간 나머지 구간을 종주할 수는 있을까? 매번 이 모양이니.... 차안에서 막걸리 한 사발에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그리고, 2주후 새벽 4시경 베창골 안산다리에서 황장산 위에 걸쳐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별빛과 은하수를 보았다. 나는 백두대간을 계속 이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