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1구간: 신풍령-덕산재

1998년 3월 22일

김종교(16회)

동문 산우회 최치석 부회장 덕에 어렵사리 산을 익혀 3년만에 100개의 산을 답파하고, 산행에 자신이 생길 무렵부터 백두대간 마루금을 가르는 꿈을 갖기 시작했다. 여러 편의 백두대간 단독 종주기를 읽어도 보고, 또 지도도 구입하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하였으나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어 오던 중 1997년 9월 5일 서울고 동문 산우회 57명의 일원으로 중산리를 출발, 백두를 향하는 대간 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나도 대간 이어 달리기에 합류하는 소원을 이루게 된 것이다.

드디어 태백 준령의 힘찬 정기를 받아 동문간의 끈끈한 정을 온 몸으로 느끼며 어둠을 뚫고 백두대간 마루금을 지르 밟기 시작한 것이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시작인가? 여기 천황봉을 오르며 감회에 젖어 쓴 글이 있어 옮겨 본다.

먼 옛날, 아주 먼 옛날부터

열린 하늘 밑에 천황봉은 있었고

산이 있어 산에 오르듯

천황봉이 있어 천황봉을 향해 오른다.

조금 남은 달빛 벗삼아

산죽은 계절 없이 우릴 반기고,

무덤 속 어르신들 자주 만나네.

길 오름 그 허리에

로타리 산장 옆 감로수는

왜 그리도 차고 시원한 지.

너덜을 올곧은 마음으로 오르지만

바윗길, 목까지 숨찬 가슴에

중산리에 두고 온 사람이 부럽구나.

하지만 그녀가 앞을 걷는

환상 쫓다 천황봉에 오르다.

우리 오름을 알리는 햄의 메아리가

노고단을 넘어 백두로 백두로……

지리산 천황봉은 남쪽 대간 마루금 중 가장 높은 봉우리다. 전에도 보았던 같은 봉우리인데 예전과 다름은 대간의 시작이며 진부령까지 이어질 기나긴 산길에 대한 도전의 열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고단까지 훤히 보이는 쾌청한 날씨는 힘든 오르막의 고통도 앞으로 걸어야 할 대간 길의 고통도 잊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10여 시간의 산행도 참으며 거뜬히 마칠 수 있지만, 등산 초기에는 90㎏이나 되는 내 몸무게를 가지고 8시간이 넘는 산행은 힘든 것이었다. 1000m가 넘는 3개의 봉우리가 있는 신풍령(빼재)구간은 심한 고통을 가져다주었고, 이는 충분히 잊혀지지 않는 곳으로 각인 되어 산행기를 쓰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1998년 3월 22일 오전 6시 25분, 9·10번 구간인 덕유산 종주 구간은 동절기 산행엔 위험이 따를지 몰라 뒤로 미루고 우리 54명 산우회원들은 신풍령 구간을 먼저 등반하기로 결정하여 신풍령(해발 930m) 휴게소를 출발하였다. 날씨는 맑았고, 바람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신풍령 도로 오른 쪽으로 난 급경사 등산로를 5분 정도 오르니, 대간 주 능선에 닿았다. 잡목을 헤치며 35분 정도 가니 되세미기재가 나오고 좌측으로 크게 휜 대간 길에는 어린 진달래 가지와 기 큰 싸리나무가 우리들의 뺨을 때리고 옷가지를 잡으며 보행을 막는다. 이 길을 벗어나 우측으로 난 대간 길을 약간 내려서면 호절골재에 닿는다. 호절골재에서 삼봉산이 훤히 보여 35분 정도 힘차게 정상에 오르니 덕유산의 장엄한 능선이 시야에 크게 와 닿는다. (두 번째 봉우리에 덕유 삼봉산 정상 포지석이 있다.) 정상에는 먼저 오른 일행들이 사진 촬영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여기서 보는 덕유산은 깃대봉에서 바라보았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저 장엄한 봉우리와 마루금을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이름이 삼봉산이라 봉우리가 3개인 줄 알았으나, 올라와 보니 다섯 개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암반 지역을 지나 우측 급사면으로 해서 하산을 시작하였다. 하산 길은 북사면이어서 삼월 하순의 잔설이 30㎝정도 쌓여 있었고, 또한 급한 내리막길이라 몹시 위험하였다. 해발 450m를 내려오는데 1시간 15분이나 소요될 정도였으니, 무릎과 허벅지에 무리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밭 가운데 서서 내려온 길을 되돌아 바라보니, 등산로는 이미 보이지 않고, 암반으로 절벽을 이룬 삼봉산의 웅장한 자태만이 남성다운 씩씩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후에 21구간인 대야산 후면 수직 벽은 더욱 놀라웠지만 삼봉산 암벽도 당시로서는 경외감을 느낄 만했다.

해발 690m에 위치한 소사재 매점에서 휴식을 취하며, 앞으로 오를 삼도봉과 대덕산(1290m)을 바라보니, 그 높이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미 3시간 반을 소모한 체력으로 어떻게 오를 지가 걱정이었다. 매점 건너편 오른쪽 절개지를 넘어 대간 길이 이어져 있었다. 걷는 길 옆 양지쪽으로 무덤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보낸 이들은 엊그제만 같을진데, 난 무심히 이들을 지나, 개간중인 천여 평 밭 위를 타고 임도로 내려섰다. 고랭지 채소밭을 갈고 있는 농부들과 눈인사를 주고받는데 표정이 그렇게 따스할 수가 없다. 마음이 갑자기 부자가 된 듯 하다. 잠시 후 오른 쪽으로 급경사면이 나타났고 고행 길이 시작되었다. 선두 그룹은 이미 모두 삼도봉을 향해 떠나가 버렸고, 후미를 보는 몇몇 전사들만이 저 밑에서 오르는 것이 보였다. 마음이 다시 급해졌다. 목장 철조망을 좌우로 번갈아 넘나들며 오르는 길은 심한 오르막길이었는데, 그 길을 한 시간 이상 참고 꾸준히 오르다 보니 삼도봉 정상이 바로 발 밑에 있었다. 전 같으면 그리 무리가 있는 코스는 아니었는데 그 날 따라 다리 근육 통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잡기 좋은 돌멩이를 주워 쥐 오른 장딴지를 때리면 조금 풀린 듯 한데, 다시 또 근육이 뭉쳐 쉬어 가기를 여러 번 한 후에야 겨우 삼도봉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대덕산을 바라보니 가는 길 중간에 완만하고 긴 억새 밭이 있었다. 갈 길이 매우 힘들 것 같아 혼자 속으로 투덜대 보았지만 이미 발길을 돌리기엔 너무 많이 와 있었고 또 가깝다고 해도 돌아설 생각은 없었다. 대덕산을 지나야 오늘 산행 목적지인 덕산령에 닿게 되기 때문이었다.

삼도봉 내리막길을 터벅터벅 힘없이 내려섰다. 오를 때보다는 장딴지에 힘이 덜 들어가서인지 다리에 쥐가 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걱정했던 억새 밭 속을 천천히 걸어가니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좋았다. 산 정상에 올라 정복에서 오는 쾌감의 포효를 부르짖는 것만이 최고가 아니었다. 두어 번 다리에 쥐가 났지만 그런대로 참을만 했다. 그러나 소사재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는 두 시간 길은 대간 산행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코스였다. 정상에 도착하면 정상주라며 건네주던 마음 따뜻한 그 사람마저도 사라진지 오래였고, 13회 선배들만이 정상 한 쪽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확실히 세가 강한 선배들이었다. 잔설이 쌓여 있는 대덕산 하산 길 역시 급경사 길이었다. 선명히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1시간 50분 정도 걸어서 다다른 곳이 덕산령이었다. 신풍령을 떠난 지 8시간 30분만에 선두보다 1시간 이상 늦게 도착한 것이다. 걱정하는 동기들이 따라 주는 한 잔의 술도 몸이 거북해 마시지 못할 정도로 몸은 지쳐 있었다. 그 날 이후, 산을 오르는 데 있어 등산 실력이 가장 발전한 인사 중 한 명이 되어 나는 갑자기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힘들었기에 신풍령 고갯길은 다시 찾을 날이 있을 것 같다.

전에도 산을 넘었는데

오늘도 그 산을 만났네.

가지 않으면 산보다 커지는 그리움.

소리 나누며 걷는 것이

그리도 좋은지,

물소리는 없지만,

바람과 나무 잎새 소리는

대간 그만의 것.

앞을 향해 걷다보면

내 사랑 대간이 거기에 있다.

※ 대간을 마칠 즈음......

우린 바쁜 날들을 접어 두고

삼년 간을 하루같이 달렸다.

사철 나름대로 삶을 느낄 때,

어둠을 떠나 대간을 향해

힘차게 달려 심장이 터지면

땀방울 흙으로 스며 우릴 키우고

숲은 떠나는 우리 모습에 세월을 잡지만,

숲은 그래도 외롭지 않을 거야.

오는 이들이 있으니......